2024년 9월 3일 8장
학사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여름을 한국에서 보낸 뒤 이 곳에 돌아오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지 않고서는 지난 학기를 버틸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내 믿음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돌아온 대학, 새로 시작하는 석사 과정. 하지만, 그다지 달라진 건 없었다. 절망스러웠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어쨌든 믿음이란 건 희망이란 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긴 것들이니까.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스스로가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갖췄다고 해야할까나. 나한테 벌어지는 일들에 최대한 일희일비하려 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이번 여름, 아버지와 함께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선'에 관한 것이었다. 인생에는 우리가 결정해야하는 선이라는 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충되는 두 격언를 비교하며 들어본다. "최선을 다해 절실하게 노력하고 간절하게 이루길 바란다면 불가능한 목표도 성취할 수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아야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단어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이 두 격언을 동시에 듣고 있다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라는 건가 의구심이 들게 된다. 불가능한 목표라도 열심히 꿈을 꾸면 달성할 수 있다? 아니면 불가능한 목표니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크지 않다?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나의 최우선 목표를 향해서 그 목표가 유일한 길인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되 실패했을 경우를 위해서 안전망(2번째 목표)을 준비해두고 실패하더라도 너무 오랫동안 실망에 잠겨있지 말고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정의였다. 이렇게 문어적으로도 길게 서술해야하는 나의 '선'을 만들어나가고 지키는 과정은 험난할 뿐이다. 요즘은 하루하루 이렇게 '선'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의 내리고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이번 여름 지엘은 여태껏 내가 해왔던 캠프와 뭔가 다른 캠프였다. 이제 내가 고기수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삶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가보려고 해봤고 (물론 모든 순간 다 잘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이상하게 후회가 남으면서도 남지 않는 캠프였다. 또, 내가 지난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5년 반 동안 거쳐온 과정의 잠재적인 결론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어느 시점 이후부터, 내가 나 자신의 인간성과 선악을 의심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얻은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나를 과거의 잣대 없이 평가할 수 있는 누군가한테 '너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상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유의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일정 부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나한테 익숙한 삶의 방식이고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선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 중이다. 세상 모든 일은 100:0의 과실로 따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한 잘못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럴 때, 무조건적으로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볼 수 있고 고쳐할 부분에 대해서 따져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태도(내가 설정했던 '선')가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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