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4의 게시물 표시

2024.06.17 7장

최근에 에드 시런이 subtract 앨범을 준비하던 시기를 다룬 다큐, The Sum Of It All, 를 봤다.  올해 초부터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에드 시런의 노래를 더 많이, 자주 들었다. 원래부터 좋아하는 가수고 살면서 꼭 콘서트에 가보고 싶은 뮤지션이지만, 다른 이유로도 의미를 많이 부여했다. 지난 여름에 헤어지고 나서, x가 좋아하던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를 한 동안 미친듯이 들었었다. 그렇게 하면 뭐라도 바뀔 줄 알았나보다. 아니면 테일러가 이별 노래를 미친듯이 잘 만들어서 내가 너무 이입되었는 지도 모른다.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를 이제 자주 듣지 않는다. 여전히 테일러의 노래는 좋다. 어떤 곡들은 가사가 여전히 내 이야기 같아서 노래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불편할 정도다. 이 두 명의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는 유명한 친구 사이이다. 내가 이별 후에 많은 시간 동안, 테일러가 x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받아들였기에, 역설적으로 에드 시런은 나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나한테 에드 시런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이전의 관계를 온전히 놓아주고 나에게 집중한다는 의미가 있다. 앞서 말한 다큐와 에드 시런의 subtract 앨범의 주된 내러티브는 에드 시런의 친구, 자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와 심리 상태이다. 다큐를 보는 내내,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그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 이별을 같은 선상에 두고 싶지는 않지만, 그도 결국은 사람이고 살다보면 어려운 순간들은 항상 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큐에서 보여지는 그는 그저 30대 초반에 청년이고 아직 누군가를 잃는 일을 대처하는 모습이 많이 낯설어 보였다. 그의 앨범에는 친구와의 이별을 표현한 곡이 많이 담겨있다: eyes closed, end of youth, life goes on, colourblind. 하지만, 가사에서는 친구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아서, 그 사실을...

20204.06.14 6장

페이스북 부계를 자주 쓰던 과거에도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대견하곤 했다. 사람들은 감정을 해소하는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 그러니까,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감정적으로 건강하거나 해소해야할 만큼 감정이 격화된 적이 없다는 뜻일 거다. 당연하게도,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와 정반대일 것이다. 6월 15일, 내일은 학사 졸업 논문의 기한일이다. 논문이라는 존재감이 주는 압박감 때문인지 닥쳐서 하는 내 평소 모습과 맞지 않게 이번에는 나름 여유있게 제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나면, 정말 졸업이다. 2019년 8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약 5년의 시간을 키워드들로 포현하자면 이와 같다: 코로나와 군대, 즐거운 추억들과 가슴 아픈 경험들, 너무 익숙해진 네덜란드, 행복과 안정감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 최근에 지원했던 한국에서 하는 발굴 캠프와 지엘 캠프를 둘 다 떨어졌다. 전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후자는 솔직히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누군가는 그런 일 가지고 그러냐고 말해도, 나한테는 지엘 캠프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바쁠 때는 참여하지 못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참 힘든 날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고민은 "내가 지금 이거를 왜 하고 있는가?"다. 이걸 함으로서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지 요즘들어 답을 쉬이 내리지 못한다. 삶의 동력을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지, 내 자신은 너무 잘 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니까. 다만, 이 조건들이 그저 허상에 불과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정말 고고학을 하고 싶은걸까? 내가 정말 레이든이라는 도시를 좋아하나? 내 주변에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