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4장
사람의 기억과 감정에 대해 비유를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나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한다. 수 없이 많은 그림이 걸려있는 갤러리라고 생각해보자. 나는 그 갤러리를 매일같이 방문하는 VIP 고객이자 그 모든 그림들은 직접 그린 화가인거다. 그런데, 이 갤러리가 인공지능처럼 특정 물건, 장소, 단어, 상황적 맥락에 반응해서 그에 해당하는 그림들을 내 눈 앞에 가져다주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아서 한 쪽 구석에 걸어놓았던 그림들도 심심치않게 내 앞으로 끌려나온다. 물론, 이 곳의 그림들은 진짜 그림처럼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라고, 그 위에 덧칠을 하면 다른 그림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 당장 보고 싶지 않은 그림들을 피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방법은 그 그림들을 연상시킬만한 것들을 최대한 피하는 거다. 이 순간에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그림도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지면 볼만하다고 느끼지도 모르니까. 그 때가 오기를 바라며 그냥 도망치고 기다리는 거다. 두 번째 방법은 조금은 직관적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좋은 싫든 계속 봐야한다면 그냥 덧칠을 하는 거다. 계속해서 다른 그림, 새로운 그림을 전에 있던 그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위에 그려나가는 거다. 이 방법은 꽤나 폭력적이다. 괴로움으로부터 도피보다는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거니까. 그만큼 더 큰 고통도 수반할거다. 그래도 선택지가 이것 뿐이라면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물론, 두 번째 방법이 절대적인 해결책이 되는 건 아니다. 원래 있던 그림의 색이 강하면 강할수록 덧칠을 한다해도 그 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검정색에 노란색 혹은 빨강색에 초록색을 열심히 섞는다고 한 순간에 노란색이나 초록색이 되지 않듯이. 그림의 본질을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구석에 박아둔 그림들 중에 진짜 잊어버려서 덧칠을 하지 못한 그림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그림들이 갑자기 앞으로 끌려나오면 불편한 기색이 드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