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9 2장

풍선처럼 부어올랐던 오른손이 그래도 지금은 움직일 수 있는 정도로 괜찮아진 듯 싶다. 이번 주 수요일에 있었던 학과 파티 중 벽에 3번 정도 주먹을 쳤다. 사실 만취 상태여서 내가 정확히 어디에다가 몇 번이나 주먹을 친 건지 잘 기억이 안난다. 아직까지 구멍 뚫린 벽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그냥 벽돌이나 시멘트 벽 같은 곳을 친 것 같다. 

맨 주먹으로 벽을 친다는 게 영화나 책에서 볼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끔찍하게 싫다. 과거에도 그러고 싶은 욕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플 것 같다는 그 찰나의 순간에 드는 생각에 실제로 그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플 걸 알면서도 술 때문인지 이번에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한 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그래서, 나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참 웃기고 슬프면서 당황스럽다.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면 짧게 답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 지 나조차도 모른다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을 나의 행동에 대한 부정확한 해명이자 뒤늦은 해석이다.

지난 3주 동안 많은 것들 시도해봤다. 극적인 반전을 준 건 아닐지라도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고 나름 잘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기타를 배워보려고 시도 중이며, 언어 교환까지 신청했다. 학과 파티, 매년 있는 파티지만 올해는 정말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2년 전과 작년의 기억은 이제 그다지 꺼내보고 싶은 기억은 아니게 됐으니까, 이번에는 누구보다 이 파티와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싶었다. 이 노력은 현재에 집중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저 다짐의 시작점은 아이러니하게 과거에 있다. 아직도 내가 과거에 얽매혀있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내가 분명 조금씩 우상향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더 좌절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여전히 '너'를 신경쓰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냥 나한테 너무 화가 났다. 나 자신에 집중해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보려했지만, 시간이 부족한 탓이었는 지 나는 또 무너지고 있었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의 늪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았다. 적어도 그 날 밤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 파티를 즐기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혼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내가 싫은데 도저히 나를 다 잡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하면 고통이 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지금 현재에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줄테니까.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 할 생각도 없는데, 후회는 없다. 왜냐면 지난 수요일 밤에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미래에도 이야기하고 싶을, 정말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내가 싫어지는 순간들을 수 없이 마주할텐데 그럴 때마다 벽을 쳤다가는 내 손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로움이 나한테 필요하다. 무력감, 혐오감, 답답함. 이런 감정들을 연료 삼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스스로한테 더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나'를 만들어가야한다.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고 생각하려한다.

마지막으로, 어제 오후에 1시간 정도 통화하며 이런 생각들을 할 계기를 만들어준 유성이한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몸의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듯이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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