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10장

오늘은 한 친구와 있던 일화를 기억해두고자 글을 쓴다. 네덜란드에 처음 와서 대학 때 만난 친구들과는 어느새 5년 넘게 알고 지내고 있다. 그 사이에, 코로나와 군대라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 우정은 끈끈하게 유지되었고 내가 이 곳에서 석사를 하고자 결정하게 된 이유에는 내 친구들의 존재도 분명 크게 작용하였다.

걔 중에서 패트릭이라는 친구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폴란드 출신이지만 브뤼셀에서 인생의 절반 인생을 보내서 내가 유사 벨기에인이라고 놀리곤 한다 (물론, 이 드립을 매우 싫어한다). 이 친구의 특징이라면 사람이 냉소적이다. 다만, 그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가 그가 가진 성격의 매력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잘 보지 못하는 그의 다른 매력은 마치 인생 2회차인 듯한 삶에 대한 달관의 태도와 성숙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다정함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말하는 내용은 성진이와 유사한데, 이 내용을 전달하는 태도는 마치 F와 같달까나...

최근에도 학과 건물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디 뻔해서 말하는 게 구차할 수준이다. 전 여자친구를 보는 것도 불편해 죽겠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있는 걸 봐야하는 건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 지 스스로 시험하는 꼴과 다름 없다. 어제도 그냥 그런 일상이었고 가뜩이나 과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라 같은 팀원한테 조별 과제 중에 약간 망나니 같이 굴어서 그것도 마음에 걸렸었다.

과제가 다 끝나고 나서, 로비에 앉아있는 패트릭한테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그 끝이 앞서 말한 주제로 흘러갔다. 패트릭은 내가 작년에 헤어지고 나서 어떤 상태였는 지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 중 한 명이고 내가 어디까지 망가졌었는 지,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고, 하고 있는 지 다 아는 친구라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생각들을 주거니받거니 하다보니 참 좋은 말들을 그가 해줬다.

먼저, 내가 석사를 마치고 나면 레이든 혹은 네덜란드를 떠날 것이라는 말을 요즘 자주하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이 약간 고여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아서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삶이 정적이다. 이는 문화적이면서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삶이 역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발전하고 있지 못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고 이 사실을 광적으로 거부하는 마인드에서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듯 같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삶이 꼭 역동적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그가 했다. 삶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고 역동적인 턴이 있다면 정적인 턴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인생이란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에 지금 당장에 조금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과 함께.

그 다음, 내가 전 여자친구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해주었다. 내가 전 여자친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에 대해서 신경쓰고 그녀의 삶을 나와 비교하지 말아야한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였을 지도 모르지만, 이 말을 듣고 '그건 아니다'라고 말한 뒤 바로 '근데 네 말이 맞다'라고 방금 한 말을 뒤집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나의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직격탄이었다. 왜냐면 저 고민을 내가 안 해본 게 아니니까 그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부정 할 방도가 없었다. 그가 해준 "사람들마다 각자 삶의 궤도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왜 나는 그녀처럼 살 수 없을까'와 같은 질문은 필요 없는 행동이야"라는 말은 스스로 알고 있을 지 언정 누군가에게 들었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던 말이었다.

이 짧은 대화를 내가 정말 글로 잘 표현했다면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왜 그의 매력을 위와 같이 표현했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고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와의 대화는 내가 저 사실을 이별을 통해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었다. 내 주변에는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친구들, 나를 위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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